2000년 의약분업 시행 시 약사회의 강력한 요구로 처방전 2매 발행이 의무화된 바 있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환자보관용 처방전을 포함한 처방전 2매 발행의 명분은 환자의 알권리 보장이었다. 환자보관용 처방전이 별도로 있어야 환자는 자기가 무슨 약을 복용하는지 알게 된다는 것이고, 약사의 조제내역은 환자보관용 처방전에 약사가 수기로 변경, 수정된 사항을 기록만 하면 문제없다는 것이 당시 약사회와 정부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처방전 2매 발행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다보니 많은 의원급 의료기관이 처방전 1매만 발행해도 별 문제가 없었으나, 최근 보건복지부는 처방전 2매 발행을 하지 않는 경우 처벌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즉, 처방전 2매 발행에 대한 처벌규정을 신설하겠다는 것이다. 처방전 2매를 발행하는 나라는 극히 드물다. 프랑스처럼 환자가 진료비를 전액 의료기관에 지불하고 추후 공단으로부터 상환을 받는 "진료비 선불제"를 하는 경우 불가피하게 처방전이 2매가 발행된다.
1장은 약국에 제출하고 나머지 1장은 약값을 상환받기 위한 제출용이다. 이 역시 엄밀히 말해 환자보관용 처방전이 별도로 발행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환자보관용 처방전 발행을 강제화하고 있고, 그 명분이 환자의 알권리라고 한다. 반문하고 싶다. 환자보관용 처방전을 발행하지 않는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는 정부나 약사회의 주장대로 환자의 알권리가 침해 당하고 있는지 말이다.
2. 대부분의 환자들은 처방전 1매 발행을 원한다.
의료현장을 도외시한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다. 처방전 2매 발행은 자원의 낭비 뿐 아니라, 보관하기도 귀찮고 분실 또는 보관 과정에서 자칫 개인정보 누출의 위험성 때문에 환자들 역시 좋아하지 않는다. 정히 자신의 처방내역을 알고 싶은 경우 별도로 2매 발행을 요구하거나 아니면 복사, 메모, 핸드폰 사진 등 여러 방법으로 기록을 남기고 있는 것이 의료현장의 현실이다.
실제 본 회가 10월 9일~10일 동안 전국 29개 의원급 의료기관의 1,275명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진료 후 처방전을 1매 발행할 것인지 2매 발행할 것인지 문의하여 환자에게 처방전 발행 매수를 선택하게 한 결과, 94.1%인 1,200명의 환자들이 처방전 1매 발행을 원했고, 나머지 75명 (5.9%)만이 처방전 2매 발행을 원했다. 즉, 대다수의 환자들이 처방전 1매 발행을 원했다는 것이다.
환자보관용 처방전이 환자의 알권리를 담보하지 않고 오히려 개인정보 누출에 대한 염려만 더욱 조장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의료현장의 상황이 이러한데도 처방전 2매 발행을 강제화하고, 어기면 처벌하겠다는 것은 현실을 완전히 무시한 정책이다.
3. 환자들은 알권리를 위해 조제내역서를 더 원한다.
환자들은 오히려 약사들의 조제내역서 발급을 원한다. 처방받은 약이 제대로 조제가 되었는지, 내 입으로 들어가는 약이 무엇인지 더 궁금해 한다는 것이다. 실제 2003년 충청북도 의사회 조사에 의하면 도민의 77%가 처방전 2매 발행 대신 처방전 1매 + 조제내역서 발행을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2010년 연세대 박형욱 교수팀의 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57%가 조제내역서 발급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복지부와 약사회는 의료계와 국민의 정당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조제내역서 발급을 거부하고 있다. 약사가 보관하는 조제내역부 만으로 충분하며 굳이 환자에게 조제내역서를 발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환자의 알권리를 무시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4. 의약품 유통 투명화를 위해서도 조제내역서가 필요하다.
조제내역서는 단순히 환자의 알권리 보장 뿐 아니라 의약품의 올바른 유통을 감시하는 기능도 있다. 2011년 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의사의 처방과 다른 저가약을 조제하고 원래 처방약으로 청구하여 약가 차액을 불법적으로 챙긴 약국이 조사약국 110개 중 무려 108개(98.2%)에 달한다고 보고한 바 있다.
거의 대부분의 약국이 처방약과는 다른 싼 약을 불법적으로 조제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의약품 유통이 대단히 후진적이고, 특히 약사가 의사의 처방과 달리 다른 의약품을 조제해도 이를 걸러낼 수 있는 기술적 장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불법조제를 막기 위해서는 의약품 유통을 추적할 수 있는 바코드 제도의 정착과 바코드와 자동 연동된 조제내역서 발급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의약품 유통의 투명화와 약사 조제에 대한 신뢰도를 담보할 수 있다. 조제내역서가 환자의 알권리 보장 및 의약품 유통 투명화를 위해 필요함에도 약사회와 정부가 조제내역서 발급을 반대하는 것은, 약사회는 의도적으로 대놓고 불법행위를 자행하겠다는 것이고, 정부는 불법행위를 알면서도 그것을 방기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5. 조제내역서 발행의 당위성은 약사 자신들도 인정한다.
조제내역서 발급의 당위성을 약사들도 인정하고 있다. 최근에 약봉투에 조제내역을 기재하는 경우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환자들은 조제내역을 열람하기를 원하고 있고, 그러한 환자의 요구를 따라야 한다고 약사들 역시 은연중에 인정한 것이다.
6.결론
이렇듯 처방전 2매 발급이 환자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환자들로 하여금 개인정보 누출에 대한 우려와 보관에 대한 번거로움을 더 많이 느끼게 한다. 환자의 알권리를 위해서는 조제내역서 발급을 더욱 원하며, 의약품 유통의 투명화를 위해서도 반드시 조제내역서 발급이 필요하다. 특히 의약품 바코드 제도와 함께 자동 연동된 조제내역서가 필요하다.
최근 약봉투에 조제내역을 표기하는 경우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것은 약사들도 이미 조제내역서 발급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필요한 자원의 낭비를 유도하고, 가뜩이나 불편한 의약분업 제도 하에서 환자들을 더욱 귀찮게 하고, 잘못 관리하는 경우 소중한 개인정보가 누출될 수 있는 처방전 2매 발행은 즉각 폐지되어야 한다. 오히려 조제내역서 발급이 더욱 시급한 과제임을 정부는 분명히 알아야할 것이다.
2012년 10월 11일
대한의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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